금융의 중심지 월가의 기원

오늘날 금융의 중심인 월가,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 다음으로 유대인이 많이 살고 있다는 뉴욕.
그리고 월가, 그 유래와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자.1650년대 남미대륙에서 사탕수수농장을 운영하던 유대인들은 신천지인 북아메리카로 향하게 된다.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곳은 맨해튼 남단. 당시 맨해튼을 다스리던 네델란드는 그들의 상륙을 허가하지 않았다.

어려움을 겪던 그들에게 서인도회사의 대주주로 있던 부호 유대인의 도움이 닿았고, 비로소 유대인 최초로 정착한 도시는 맨해튼 구석의 어촌마을 월가였다. 이 후, 1664년 네델란드가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자 맨해튼은 영국에게 넘어가게 되었는데, 새 영토의 주인인 된 요크공작의 이름을 기려 맨해튼은 뉴욕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뉴욕은 유대인 사회의 중심이 되었는데, 다른 나라 초기 이민자들은 번잡하고 지저분한 항구도시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떠돌이 생활을 오래한 유대인들은 어촌에서 생선잡이를 하며, 일부는 행상을 하며 돈을 모으고 기반을 넓혀갔다. 이 후, 정착한 유대인들은 일자리가 생기는 대로 유대인들을 불러 들였다.

그 무렵 유럽에서 건너온 유대인들이 불어나자 필라델피아와 뉴포트에 유대인 촌이 만들어 졌다. 당시 유대인 무역상들이 네델란드 서인도회사와 교역했던 상품은 밀, 모피 그리고 노예였다. 당시 유대인들은 3각무역으로 부를 불려나가기 시작했고 1723년 미국 최초의 유대회당을 뉴욕에 세우게 된다.

뉴욕항구와 가까운 월가는 세계각국 유대인 커뮤니티를 통해 무역업을 주도하였고, 이는 큰 자본 축적의 수단이 되었다. 이러한 자본은 무역업을 지원하기 위한 은행, 보험과 같은 금융산업을 탄생시켰고, 월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게 된다. 월가에서 돈이 돌자, 정치인들도 월가로 몰려 들게되고, 월가는 무역과 금융, 정치라는 삼박자를 갖추게 된다. 이후 영국군에 대한 식민지 독립저항세력의 본거지로 발전하며 독립전쟁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유대인들은 조지워싱턴의 가장 큰 전쟁후원금 후원자가 되었고, 직접 전쟁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결국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는데 적지않게 도움이 된 것이다. 이후 1789년 미국 최초의 수도는 뉴욕이 되었고, 월가에 위치한 페더럴 홀에서 조지 워싱턴은 초대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유대인들의 본거지인 월가는 미국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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