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15일, 리먼브라더스는 파산했고 금융위기 폭풍이 전세계를 강타했다. 1850년에 설립된 리먼 브라더스는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투자은행이었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기폭제로 여겨졌다. 그러나 실제로 상하이지수의 6000포인트 붕괴에 빠져 있던 2007년 초만 해도 이미 위기가 가시화되고 있었다. 2007년 4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은행인 영국 노던록은행은 예금자에 의해 운영되었고, 미국 투자은행 5위인 베어스턴스 산하의 2개 펀드는 3대 투자은행이었다.
각각 최대 은행과 국내 은행,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는 손실을 초래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전문가들은 위기를 주시하고 해석되기 시작했다. “연준과 유럽중앙은행(ECB), 일본은행(BOB), 호주은행(BOA) 등이 시장에 자금을 투입하면서 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고 있을때 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은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느끼게되었다.
사태는 마치 도미노와 같았다. 하나가 무너지자 결국 전체가 붕괴되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미국 금융공사와 베어스턴스, 패니 메이, 프레디맥의 몰락은 미국 인터내셔널 그룹 메릴린치, 워싱턴 뮤추얼,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의 붕괴의 충격으로 이어졌다.위기는 월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자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종이 상자를 들고 회사를 나왔고, 곧 전세계 모든곳에서 같은 장면이 반복됐다. 금융위기는 금융기관에서 실물경제로 급속히 확산됐고, 실물경기 침체와 전반적인 시장환경 악화로 수많은 기업들이 축소 계획을 발표했고 파산을 선언하는 기업들도 많았다.
위기는 미국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2007년 미국의 GDP는 세계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했는데, 세계 GDP의 30% 이상을 차지하였다.게다가 미국은 주요 수입국으로 중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의 GDP 성장을 촉진하고 있었다. 이로인해 수출기업 일부가 무너졌고 직원을 해고하고 임금을 줄인 기업이 많았다. 당시 수많은 기업의 실적이 곤두박질치게 되었다. 하루빨리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기부양책과 금융구제책 소식이 10월 4일 미국에서 7000억 달러, 유로존에서 대규모 구제금융, 10월 12일 중남미 중앙은행들이 금융위기 공동대응을 발표했다. 중국도 4조달러의 부양책을 펼쳤다.
우리나라도 금융불안을 완화하기위해 고군분투했다. 2008년 10월부터 2009년 2월까지 6차례 기준금리를 내렸고, 외환보유안정을 위해 미국 연준, 일본은행, 중국인민은행과의 통화스왑을 체결했다. 리먼사태는 항상 금융위기가 올때마다 회자되는 중요한 과거의 사건이다. 앞으로의 금융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살아있는 교과서이다.